관수정
설명
  • 관수정(觀水亭)
    소재 : 전남 장성군 삼계면 내계리 609-1

    관수정(觀水亭)은 전남 장성군 삼계면 내계리 천방마을에 있는 정자로서, 지지당(知止堂) 송흠(宋欽, 1459~1547)이 말년에 낙향하여 건립한 것이다. 관수정이라는 정자 이름은 󰡒물결을 보고 근본이 있는 것을 아는 것이며, 그 맑은 것을 보고 나쁜 마음을 씻은 후에 가히 관수(觀水)라고 할 것이다󰡓라는 뜻에서 붙여졌다. 이는 지지당이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자 낙향하여 성리학(性理學)에 입각한 정치이념을 구현하려는 일관된 선비 지향의 뜻을 표현한 것이다.
    지지당은 1459년 3월 13일 장성군 삼계면 단산리에서 우찬성의 승직을 받은 아버지 송하원(宋河元)과 어머니 하동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송흠의 본관은 신평(新平)이며, 호(號)는 지지당(知止堂)인데, 관수정을 지은 이후로 관수정(觀水亭)이란 호가 더해졌다. 지지당은 1480년(성종 11) 21세의 젊은 나이로 사마시(司馬試)에 오른 후 1492년 문과(文科)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 정자(正字)로 첫 관직을 받은 이후 89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연산군의 난정기를 제외하고는 허리에서 인수가 떼어지지 않았다.
    지지당은 연산군(燕山君)의 정치에 회의를 느껴 스스로 사직한 후 고향으로 내려와 교육에만 전념하다가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새 시대가 오자 1516년(중종11) 홍문관(弘文館) 정자(正字)로 복직하였다. 1528년(중종 24) 담양부사를 역임하고, 1531년에는 장흥부사를 지냈으나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전주 부윤(府尹)으로 옮겼다.
    그 후 광주․나주 목사(牧使)를 거쳐 1534년(중종 29) 전라도 관찰사(觀察使)가 되었으나 또 다시 노모의 봉양을 위해 집으로 되돌아갔다. 당시 어머니는 아들의 효도 덕분이었는지 101살까지 살았다고 한다.
    특히 지지당은 1538년에 청백리(淸白吏)에 뽑혔는데, 가는 곳마다 청빈(淸貧)․ 청렴(淸廉)하여 명성을 얻었고 이 때문에 󰡐삼마태수(三馬太守)󰡑로 칭송되었다. 이로써 그는 더욱 승진하여 이조(吏曹)․병조판서(兵曹判書)를 거친 후 1543년(중종 38)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겸 지경연사(知經筵事)에 이르렀다.
    관수정 내에는 지지당의 품었던 뜻이 두고두고 외롭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듯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를 비롯하여 홍언필, 전안국, 성세창, 신광헌, 김인후, 임억령 등의 제영(題詠) 등 당시 명망 있는 문인들의 시(詩)가 현판(懸板) 되어 있다.
    정자는 근래에 새롭게 다듬어 쌓은 두벌대의 돌 기단 위에 복발형(覆鉢形)의 주춧돌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에는 경사지게 깎은 보아지를 끼워놓고 주두를 놓은 다음 퇴량을 걸쳐 얹었다. 이 퇴보 위에는 장혀받침 굴도리를 놓아 서까래를 받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