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윤선도(尹善道)
호 : 고산(孤山)
저술연대:
출전:《고산유고(孤山遺稿)》
큰 아들에게 준 편지
이 편지는 연월일을 알 수 없어 권말에 붙였는데 후에 상고하여 보니 경자년에 쓴 편지였음
네가 금산(錦山) 향시(鄕試)에서 세 편을 제술하였는데, 살펴보니 부(賦)가 가장 점수가 좋다. 남다른 등수를 얻었다고 해서 괴이할 것이 없다만 낙방을 하였으니 한스럽다. 그러나 부의 여섯째 구 가운데 ‘납약지하’ 글귀 해석은 사실을 적은 것이나 생략한 것이 너무 많은 것이 흠이다. 책문(策文)도 잘 썼으나 조목을 따라 뜻을 표현한 것이 너무 생략되어 사실을 알 수 없는 것이 똑같이 한 가지 흠이다.
대개 과거 시험장의 정문(程文)은 지나치게 상세하게 지어 올리는 것은 괜찮으나 지나치게 생략하는 것은 안 되고, 지나치게 세밀하게 써도 되지만 지나치게 소략하게 쓰면 안 되는 것이니, 이 뜻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또 모름지기 고금문자를 궁리하여 세밀하게 보아 전환하고 이어 붙이는 묘를 터득한 후에야 글을 짓는데 흠이 없을 것이다. 고인들의 문법에 침잠하지 않으면 한갓 문자지간에 사소한 재주를 부릴 따름이다. 이는 반드시 조잡하고 경솔하여 거친 폐단이 있을 것이니 더욱 이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매번 방마다 다 실패한 것은 네가 참으로 공부에 힘쓰지 않은 소치이다. 그러나 그 기본을 근원하여 보면 하늘이 도와주지 아니한데서 나온 것이다. 하늘의 도움은 오로지 적선(積善)하는데 있는 것이니 너희들은 이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하물며 아들 손자가 거의 생산하여 기르지 않는데서야! 제사가 끊길까 염려되니 평상시 두려움을 어찌 말로 다하겠느냐? 너희들은 수신․근행․적선․행인을 제일의 급선무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너도 전에 생각이 이에 미친 적이 있었느냐? 한(漢)나라의 문제(文帝)와 경제(景帝)는 절약과 근검으로 사업을 하고, 누차 백성들의 세금을 덜어주니 자손이 삼대나 흥하였다. 역대의 역사를 세밀하게 생각하면 다 그렇게 되지 않음이 없었느니라. 우리 집안의 선세(先世)를 말하면 고조께서는 농사일에 힘을 다 썼고 노복들로부터는 박하게 거두었다. 그리하여 증조부 형제가 발흥하여 일문이 번성하게 되었다.
영광(靈光) 조부님은 의롭지 않은 일을 하지는 안았으나, 부자가 되는 것에 마음을 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자손을 낳아 기른 것이 쇠하여 끊어졌다. 행당(杏堂, 潤復) ․ 졸재(拙齋, 尹行) 양쪽 집안 증조부님도 고조의 가규를 몸소 체득하지 못하여, 자손들이 다 보잘 것이 없게 되었다. 이에 하늘의 보답이 이처럼 명명백백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고증조부님은 절약과 근검으로 흥하였지만 후대의 사업은 세속의 화미함을 따르니 점점 선세의 풍도와 같지 아니하고 쇠하여졌다.
『주역』의 “달이 차면 기운다”는 이치로 크게 경계하고, “교만함에 이르면 손해를 부르고 겸손하면 이익을 준다”는 말은 지극한 가르침이 아닌 것이 없으니 각골명심하지 않겠는가? 우리 집안이 당연히 손해를 당함을 생각하여 뒤에 적으니 너희들은 마음속에 새겨듣고 소홀히 하지 말거라.
하나. 의복․말안장과 몸을 받드는 모든 것은 다 마땅히 구습을 고치고 폐단을 살펴라. 음식은 굶주림을 채우는데 그치고 의복은 몸을 가리는 데서 취하며 말은 걷는 것을 대신하는데서 취하고 안장은 단단한 것을 취하며 그릇은 적당하게 쓸 것을 취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말을 탈 때는 멀리 갈 수 있는 한두 마리를 구하여 여행길에 대비할 뿐이다. 어찌 꼭 잘 달릴 필요가 있겠냐? 풀을 벨 때는 집안의 소라도 이용하여서는 아니 되거늘, 하물며 이용할 수 있는 노복과 마을 사람의 농우는 말할 필요가 있겠느냐? 한갓 사람을 고통스럽게 할뿐만이 아니라 사리에도 크게 합당하지 않으니 이와 같은 일은 지금부터 절대로 하지 말거라. 다만 갖고 있는 한두 마리 짐말에 짐을 싣는 것은 괜찮다.
나는 오십 이후에야 장삼 명주옷을 입었고, 비로소 삼베 겹옷을 시험 삼아 입었다. 고향에 있을 때 네가 장삼 비단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매우 불쾌했다. 아마도 이 두 옷은 대부의 복장으로 대부이면서도 입지 않은 자가 많다. 하물며 벼슬도 하지 아니한 사람이 대부의 의복을 입는다니 말이 되느냐? 이와 같은 복식은 모름지기 배척하고 입지 아니 하여 검소한 덕풍을 숭상함이 올바를 것이다. 대개 이러한 물건은 반드시 소박함에 가까워야 하고 사치에 가깝지 말아야 길이 이를 칭송할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제갈공명이 말하기를 “담박하지 아니하면 밝은 의지가 없고, 평안하고 안정되지 아니하면 원대한 임무를 행할 수가 없다”고 하였으니, 이 뜻을 말함이 아니겠느냐? 부디 경계하고 잊지 말아라. 단서(丹書)에 말하기를 “조심하는 마음이 게으름을 이긴 자는 길하고, 게으름이 공경하는 마음을 이기면 멸망한다”고 하였는데 소홀한 것도 태만한 것이다. 태만의 해는 멸망에 이르는 것이니 어찌 한심하지 아니하겠느냐? 모름지기 공경으로써 마음에 두고 감히 잠깐 동안이라도 소홀히 하지 말거라. 부인의 의복은 나이가 많으면 명주를 사용하고 나이가 어리면 명주와 면을 섞어 쓰고 채단을 입지 아니한 것이 옳을 것이다.
하나. 노비의 공물은 고조 때에는 한사람 당 상목 한필로 정하였는데 그 후에는 가감하여 일정하지 않았다. 이제 법식을 정하면 어떻겠느냐? 노는 35척 평목으로 하고 촘촘히 짠 것은 2필로 하되 비는 한필 반으로 하여라. 가난한 자로 부역이 많은 자는 양을 줄이고 넉넉하다고 하여 더 올리지는 말아라. 이로써 법칙을 정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나. 사역노비는 후하게 구휼하여라. 모름지기 위(주인가)를 덜고 아래(노비가)를 더하는 도를 써서 주인집에 더하거나 감하여 스스로 알아서 받들게 하여라. 그러나 노비의 의식을 넉넉하게 하고 나를 우러러 보고 사는 자로 하여금 어렵고 고통스럽게 하여 원한을 품지 않게 하는 것이 지극히 옳다. 매일 사역하는 일은 반드시 그 힘을 탕진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법식을 정하여 가르쳐라. 또 노비들이 잘못이 있는 경우에 작으면 가르치고 크면 매를 때리되 매양 나를 얼싸안아 준다는 감정을 두게 하고 나를 학대한다는 원망이 없게 하여라. 윗사람의 도는 오로지 관대함으로 주를 삼아라. 부인들은 본성이 편벽하니 벌을 곤장으로 하는 권한을 주어서는 아니 되고 매를 때리는 것도 법식을 정하여 감히 지나침이 없도록 하고 손이 가는대로 멋대로 구타하지 못하게 하여라. 또 모름지기 잘 타일러 말하되 엄하게 경계하도록 하여라.
하나. 혹간 크게 움직일 일이 있는 것 이외에 세세하고 작은 잡역과 일반의 심부름하는 일은 집안노비에게만 맡기고, 외거노는 부리지 말거라. 그들을 넉넉하게 대하고 스스로 힘을 다하게 함에 근본 하여, 사는 낙이 있도록 하여라. 동네 사람들을 종종 부리는 것은 더욱 아니 된다. 이와 같은 일은 모름지기 유념하여 살피고 인내함이 괜찮을 것이다.
하나. 후손을 낳아 달라고 기도 하는 일은 모름지기 의학입문(醫學入門)의 구사조(求嗣條)와 기사진전(祈嗣眞銓)을 위주로 하되 힘써 행하여야 함이 지당하고 지당하다. 도덕군자의 말은 불신하면서 맹인이 가리킨 바를 믿어서야 되겠는가? 사특한 도와 무복의 말은 귀를 막고 배척하고 부녀자들이 의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여라. 진전 십 편 중 끝 편은 기도편인데 소위 기도라는 것은 니구산(尼丘山)에서 공자의 부모가 기도한 뜻에 불과하므로 공자의 부모와 같은 적선이 없으면서 기도하면 신의 노여움만 더할 뿐이 아니겠느냐? 하물며 무속의 근거 없는 말을 따라서 기도하여야 되겠느냐?
한갓 무익할 뿐만 아니라 더욱 해를 끼치는 것이 이를 말함이니 다만 가소로울 뿐만이 아니다. 진전은 개과천선을 제일급선무로 삼는 것이니 위에서 운위한 일이 다 이런 유이니 유념하고 유념하도록 하여라. 후사를 구하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중하되 그것을 하는 것은 아니 되는데, 하물며 다른 신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야 말 할 필요가 있겠느냐? 일절 이를 배척하고 집안의 도를 바로 잡아 다시 꼭 집안을 격앙시키고 타락하지 말게 하여라.
하나. 전부터 원근의 노비들이 매양 장사[貿販]를 가지고 고민을 하였다. 승노(僧奴) 처간이 그 당시 나에게 힘써 역설하였는데, 나는 즉시 바꾸지 못하여 뉘우치고 한탄하였다. 내가 담배를 팔아 오라고 하는 경우에 전부터 시가(時價)에 따라 팔고, 사는 사람에게 손해가 없게끔 하였으니, 후에도 당연히 그렇게 하여야 한다. 금자에 남초(南草, 담배)를 팔러 서울에 사람을 보내게 되면 사고파는데 폐단이 없도록 하여라. 이외의 모든 매매에 네가 먼저 하지 말거라. 내말로 모든 자제에게 통렬하게 금하여 일체 하지 못하도록 하여라. 너는 아무쪼록 형제를 위한다고 하여 부형을 속이지 말거라.
하나. 이제부터 뱃짐을 부린다 하여도 노복으로 격군을 삼되 앙역노(仰役奴)가 아닌 사람에게는 모두에게 시가에 맞춰 가감하여 배 값을 지급하여라.
하나. 성현의 경적(經籍)에 대한 풀이는 네가 말을 알아먹을 때부터 귀가 닳도록 가르친 것이다. 소학(小學)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본보기가 되게 하니 학자는 반드시 이를 위주로 하여야한다. 또 일생동안 언어 문자 간에 네가 힘쓰고 노력해야 하니 이제 번거롭게 말하지 않겠다. 단지 때로 고요히 앉아서 뜻을 붙이고 한가로이 소학을 보면 반드시 새롭게 터득함이 있을 것이다. 또 경전을 자주 반복하여 읽고 세밀히 살피면 심신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모두 다 일생동안 마땅히 힘써야 할 일로 죽을 때까지 바꿀 수 없는 것이다.
하나. 우리 집안이 흥하고 망하는 것은 이 종이 한 장에 달려있으니 결코 범연히 보지 말거라. 또 손자들에게도 새겨 읽히고 이를 잊지 않도록 하여라.
寄大兒書 此書未有年月 故附卷末 後攷之 是庚子年書也
汝之錦山三製, 見之賦最勝, 雖居異等, 無足怪也, 而至於見屈, 可歎. 然鋪敍中納約之下, 解題事實, 略之太過, 是欠也. 策亦好矣, 而逐條題意, 太略而沒實, 同一欠也. 大槩場屋程文, 寧過於詳而不可過於略, 寧過於密而不可過於疏, 此意不可不知也. 且須着意細看古今文字, 得其轉換承接之妙, 然後乃可作文無欠. 若不沈潛於古人文法, 徒使些少才氣於文字之間, 則必有鹵莽滅裂之弊, 尤不可不知也. 每榜皆落莫, 固是不勤之致, 而原其本則出於天不佑也. 得天佑惟在積善, 汝曹不可不知也. 況兒孫幾盡不產育? 絶祀可慮, 尋常恐懼, 可勝言哉? 汝曹不可不以修身謹行積善行仁爲弟一急務也. 汝曹亦曾念及乎此否? 漢之文 · 景, 節儉爲事, 屢蠲民租, 而子孫三興. 細思歷代靑史則無不皆然, 雖以吾家先世言之, 高祖勤於稼穡, 取於奴僕最薄, 故曾祖昆季勃興, 一門鼎盛. 靈光祖父主雖不爲不義之事, 似留心於爲富, 故生育衰絶. 杏堂 · 拙齋兩族曾祖皆不能體高祖家規, 故子孫皆陵替. 天報之昭昭, 此可知也. 高曾祖以節儉而興, 後代之事, 隨俗華美, 漸不如先世之風而衰. 易理以月旣望爲大戒, 及滿招損謙受益等語, 無非至敎, 可不銘心刻骨, 吾家所當損者, 思而錄之于左, 汝其惕念毋忽. 一, 衣服鞍馬凡百奉身者, 皆當改習省弊. 食取充飢, 衣取蔽體, 馬取代步, 鞍取堅牢, 器取適用可也. 所騎只求可以涉遠者一二頭, 以備行路而已, 何必要能步也? 靑草刈時, 雖家牛隻不可用也, 況可用奴戶及洞人之農牛耶? 非徒人必苦之, 大不合於事理, 如此等事, 自今絶勿爲之. 只庀一二卜馬載取可也. 吾於五十後, 衲紬衣,苧裌衣始試爲之, 而在鄕時曾見汝服衲紬衣, 心甚不悅. 蓋此兩物, 大夫之服, 而大夫而不爲者猶多, 況笠下之人而可衣大夫之服乎? 如此服飾, 須斥去不御, 以崇儉德可也. 大槩此等物, 須近於樸, 毋近於侈, 稱此以永. 一可知十. 諸葛武侯之言曰: “非澹泊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遙”, 旨哉言乎? 戒之勿忘. 丹書曰: “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 忽亦怠也. 怠之害乃至於滅, 豈不寒心? 須以敬存心, 毋敢斯須有忽於斯. 婦人之服, 則年老則用紬, 年少則雜用紬綿, 勿用綵段可也.
一, 奴婢之貢, 高祖時則每名常木一疋定式, 而其後或加或減無常矣. 今則定式如何? 奴則卅五尺平木密織者二疋, 婢則疋半, 貧者役多者則量減, 富者勿加, 以此爲定式可也.
一, 仰役奴婢, 不可不厚恤. 須用損上益下之道, 益減主家自奉, 而每優奴婢衣食, 使仰活於我者無所艱苦而含怨, 至可. 且逐日所役, 須限不盡其力定式敎之, 且奴婢雖有所失, 小則敎之, 大則略笞, 每令有撫我之感, 無虐我之怨可也. 在上之道, 惟當以寬爲主. 婦人性偏, 不可付刑杖之權, 笞亦定式, 使無敢過, 不敢爲手自雜打事, 亦須善喩嚴戒也.
一, 或有大運力外其他細小雜役及尋常使喚等事, 只任家內奴婢, 勿使戶奴. 使其優游而自盡於力本有生之樂. 洞人尤不可種種使之. 如此等事, 須留念察之, 忍耐過了可也.
一, 祈嗣一節, 須以入門求嗣條及祈嗣眞詮爲主, 勤而行之, 至當至當. 不信至人之言, 而信盲人之指示乎? 左道巫卜之說, 塞耳斥之, 使婦子毋惑也. 眞詮十篇中末篇祈禱, 而所謂祈禱者, 不過尼丘山之意也, 無孔顏之積善而禱之, 則不亦益神之怒乎? 況從巫俗無稽之說而禱之乎? 非徒無益, 而又害之者, 此等之謂也, 不但可笑而已也. 眞詮以改過遷善爲第一急務, 上面所云之事皆此類也. 念之念之. 爲求嗣祈禱重也, 而猶不可爲之, 況其他神事乎? 一切斥絶, 以正家道, 更須激昂毋墮.
一, 自前遠近奴婢每以貿販爲悶. 僧奴處簡在時力言於我, 而我不卽令改, 悔吝可勝, 吾所命南草之販, 自前從時直, 俾無所損於受者, 後亦當然, 而今茲若得送京則尤無授受之弊也. 此外一應貿販, 汝先勿爲, 而以我言痛禁諸子弟家, 一切勿爲, 汝須勿爲兄弟而欺父兄也.
一, 今茲雖爲船卜, 而使奴輩爲格, 則仰役奴外, 皆准時加減給格價.
一, 聖賢經訓, 則自汝曹解語時吾所提耳而誨者也. 小學是做人底樣子, 學者當以此爲主者, 亦於一生言語文字間, 勤勤懇懇於汝曹者也. 今不須瀆告也. 但有時靜坐, 着意閑看小學, 則必有新得. 且將經傳循環細玩, 則無非懾伏身心之助. 此皆一生當務, 而至死不可變者也.
一, 吾家興滅, 在此一紙, 切勿泛視. 且令孫兒輩銘讀勿忘.